일상이야기/임신,육아 기록

육아와 감정기복

경자의하루 2023. 11. 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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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면서 학생, 연구원, 직장인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을 하는 것에 익숙했던 나.

올해 6월부터 회사를 쉬었으니 벌써 5개월째 사회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쉬고 있다.

그리고 7월, 출산과 함께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출산 후 50일 정도는 산후조리원, 산후도우미, 남편의 출산 휴가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육아를 했지만

그 이후부터 남편은 일을 하고, 나는 집에서 홀로 육아를 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육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나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출산 이후에 엄청나게 변하고, 하루하루의 감정이 다를 때도 많다. 

오늘은 감정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T발 C야'의 표본인 사람이었던 나의 감당 안 되는 감정기복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거의 4개월 차에 접어든 아기를 키우고 있는 최근 나의 저녁 루틴은 이렇다.

 

보통 남편이 저녁 8시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다.

그러면 함께 아기 목욕을 시킨 후, 남편이 아기 분유를 주는 동안 나는 아기 빨래를 널고, 잠자리를 준비한다.

(아기 두상 관리 때문에 옆으로 재우는데, 아래 사진처럼 매일 방향을 바꿔가면서 재우느라 베개 위치와 홈카메라를 잘 보이도록 바꿈)

그냥도 이쁘지만 잘때 제일 이쁘다

 

분유를 다 먹으면 남편이 아기 트림시키고, 아기를 재울 때 같이 들어가서 침대에 눕힌 후 잘 자라고 인사하고 나온다. 

그쯤이 저녁 9시. 그 이후에 남편은 젖병설거지를 하고, 나는 아기 매트를 닦고, 전날 말렸던 아기 빨래를 정리하고, 로봇청소기를 저소음모드로 돌리면 9시 반쯤 육퇴다. (아기는 요즘 저녁 9시쯤 잠들어서 아침 8시쯤 일어나는 효녀다.)

 

육퇴 후 나는 요가를, 남편은 유튜브 보면서 제자리 뛰기와 턱걸이를 한다.

(인테리어 할 때 만들었던 치닝디핑 운동방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ㅋㅋ)

 

[홈짐 인테리어] 치닝 디핑 설치 공간 만들기

오늘은 이사하면서 나의 최대 고민이었던 치닝 디핑 (가정용 턱걸이 기구) 설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이제는 우리 집 만의 '매력포인트'가 된 작은 홈짐 공간, 어떻게 꾸몄는지 보러 가

finfree.tistory.com

 

나도 요즘에는 남편 도움을 받아 턱걸이 5개씩 연습하고, 마무리로 함께 6분짜리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한다. 

하루 일과 중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 바로 남편이 퇴근해서 함께 육아하고, 운동하는 이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남편이 회식을 하고 집에 9시 넘어서 들어왔다.

분명 많이 늦은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회식했는데도 일찍 들어와 줘서 고맙다

 

근데 내가 제일 기대하고 행복해하는 그 일과를 같이 못하니 어쩐지 기운이 빠지고 기분이 우울했다.

내가 생각해도 별일이 아닌데 기분이 우울한 것이 이상해서 계속 외면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반 장난식으로 '나 회식하고 왔는데 젖병 설거지 왜 안 해놨냐, 너 저번에 친구들 만나러 갔을 때 나는 다 해놨는데'

라고 말하니까 우울했던 감정이 갑자기 크게 증폭되었다.

 

기분이 안 좋아져서 그만 말하라고 했는데, 술 한잔하고 더 눈치 없어진 남편은 그 얘기를 반복해서 했고,

나는 안 좋아진 감정에 파묻히기 싫어서 나의 루틴대로 저녁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가를 하면서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눈물이 났다.

 

솔직히 왜 젖병설거지를 안 해놨냐 라는 말이 장난인 것도 알고, 남편이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설거지를 했다.

근데 그냥 왠지 모를 서러움이 폭발했다고 해야 하나. 

 

하루 중에 남편이 퇴근하는 그 순간을 계속 기다리고 제일 바라고 있는 나의 이런 상황이 싫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걸 엄청 싫어하는 스타일)

아기가 엄청 예쁘고 나 자신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런 사랑하는 아기와 둘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엄청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고 내년에 회사 복귀하면 엄청 그리워할 순간들이라는 걸 알면서...

현재는 그 시간이 빨리 지나서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 얼른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내가 싫고, 아기한테 미안해지는 것이다.

 

아기랑 있을 때 혼자가 아닌 둘인데, 계속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친정이 가까웠다면 부모님이 종종 오셨을 텐데 그랬다면 덜 힘들었을까?

시댁이 가까워서 시부모님이 종종 오셨다면 덜 외로웠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감당이 안 되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일 듯.

장난으로 했던 말에 펑펑 울었던 나를 보고 놀라서

오늘 마침 회사에서 교육받는 날이라 5시면 퇴근할 수 있다고 일찍 퇴근한 김에 산책할까? 하고 말해주는 남편.

산책을 제안하는 남편의 카톡 ㅋㅋ

 

평소에 어떤 문제(마음적으로나 일적으로나)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스텝별로 계획을 세우는 것에 익숙한 나인데 오늘은 블로그에 이렇게 내 감정을 고스란히 적어보고 싶었다.

 

육아하면서 마음이 힘들 때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지켜보고, 가까운 사람에게 힘들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혼자 또는 같이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 아기가 낮잠 자는 틈타 최신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쓰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원슈타인'존재만으로'라는 노래.

예전에는 이런 노래를 들었을 때 남편이 생각났는데 이젠 아기가 먼저 떠오른다. 

엄마가 진짜 많이 사랑해.

 

 

But I
네 생각으로 힘이 나네
방금 전에 널 본 것처럼
유난히 널 닮은 별 아래
세상이 환하게 보여
넌 나를 빛나게 해
존재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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